59.
하나님께서 영혼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큰 싸움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느꼈다. 오늘 기도회에서 중보를 하며 사단과 진짜 힘겹게 싸워 한 영혼을 건졌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 명령하셨고, 또 우리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리고 보이셨다. 이 처절한 영적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사실 그랬기에 예수님으로 오셔서 죽으셨다. 그렇게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이기에, 천사 군단장 미카엘이 사탄을 감히 어쩌지 못 할 만큼 (유다서 1장 9절) 사탄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기에, 자신이 죽으시고 그 적진 안에 들어가셔서 악의 권세를 깨부수는 것, 그 사단의 머리 위에 십자가로 못을 박아버리는 그것만이 완전한 승리였다. 그리고 그 싸움을 이기는 –절대 질 수가 없는 100%의-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로 자기 자신을 던지신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승리! 하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사단의 영이 우리들을 강력하게 공격해 마지막까지 우리를 끌어 내리려고 하기에 주님은 여전히 그분의 천사들과 용사들, 즉 성도들을 보내 계속 전쟁을 하고 계신다.
이미 승리한 싸움을 왜 계속 해야 하는가? 우리의 싸움은 이미 승리하였기 때문에 매인 자들, 포로 된 자들을 탈환 하는 싸움인 것이다. 다른 게 아니다. 그들을 탈환하고 오직 악만 완전 진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주님은 여전히 그 싸움을 하고 계신다. 그를 돕는 용사들이 너무 부족하지만, 그분은 그분의 권능으로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래서 절대 택한 자들을 놓지 않으신다. 나 또한 그렇게 구원받은 것이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은 철저하고 엄청난 영적 전쟁의 승리 끝에 주님이 주신 것임을 깨닫자. 그분이 이미 승리하셨기에 우리가 믿음의 선포만 하면 다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그 영혼의 구원의 확신을 우리가 얻었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고 기쁘던지 막 울었다. 얼마나 하나님이 신실하신지, 그 권능이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을 보며 얼마나 위대하신지 다시 한번 깨닫고 감동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훨씬 더 기뻐하셨다. 훨씬 더.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주님 나를 구원하셨을 때도, 분명 그렇게 기뻐하셨을 것이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60.
9월 27일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보혈이 얼마나 우리에게 무겁게 느껴지는가? 그 사랑을,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겠는가? 우린 입으로는 안다고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입으로는 천금보다 무거운 보물이라 말하지만 먼지보다 가볍게 여긴다. 정말로 우리 믿는다는 사람들이 너무 십자가 사건을 가볍게 여긴다. 아무런 감흥도 이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째서?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그러나 그 사건은 몇 천 번을 들어도 우리에게 감동과 끓어오르는 듯한 벅찬 기쁨 그리고 내 죄와 죽음에 대한 깊은 심연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매일매일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항상 십자가 아래에 그분을 향해 우리를 낮추는 깊은 굴복이 마음 중심으로부터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감동이다. 왜? 그것은 영원한 것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고, 또 그것은 사랑, 완벽한 사랑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없었으면 우린 어디로 갔겠는가? 파멸뿐이다. 영원한 파멸에서 건져진 사람들이 영원히 감동으로 그분을 찬양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많은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십자가를 가볍게 여긴다. 그냥 주님 믿는다면서, 십자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는다. 삶에서 하나님 감사하다고, 주님 살아계시다고 말은 하지만 십자가가 정말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사랑에 감격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진정 믿는 것인가? 그들의 마음이 진정 깨끗함을 입은 것인가?
우리 몸이 온갖 오물과 고름들로 더럽혀져 있는데 그 더러운 것을 스스로 닦아낼 수 없는 상태일 때, 그것을 닦아준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매일같이 닦아준다면 고마움이 더 커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젠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아무 감흥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교회에 간다. 아무런 감화감동도 없이 성경을 읽거나 아예 읽지도 않는다. 주님 그래도 날 사랑하시겠지, 하고 그냥 감동 없이 산다. 삶에서 감동이 없다. 삶에서 그 사랑과 그 사랑의 빛이 퍼져 나오지 않는다. 기쁨이 없다. 그들이 믿는 복음은 진정 십자가 복음인가???
오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어떡해서 그러실 수 있으셨을까? 어째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어떡해도 갚을 수 없는 이 은혜를 어찌 받아야 하나? 너무 무거웠다. 너무 무거워서 주님을 더 사랑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 정말 그렇다. 그 십자가 외에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언가? 도대체, 믿는다는 자들이 십자가 외에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죄를 대속하셨던 그 분 말고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도 다른 것들이 보인다. 십자가는 내팽개치고, 그 은혜는 귀로 너무 들어와서 그냥 지겹고, 실감도 안 나기에, 보이고 나를 자극하며 쾌감을 주고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것을 찾는다. 이게 무슨 복음을 믿는다는 자인가? 이게 무슨 작태인가? 자길 위해 죽으신 분,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니 ‘그래, 날 위해 죽으셨지. 그게 뭐? 난 내 삶을 살아야겠어. 죽으신 건 고맙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이게 뭔가? 너무 배은망덕하지 않나? 이딴 쓰레기 같은 믿음이 믿음인가? 복음이 삶에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믿음인가? 난 다른 누구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하고 있다. 내가 딱 그렇다.
53.
9월 20일 영적 법칙.
오늘 주님이 중요한 영적 법칙을 몇 개 알려주셨다. 그 중 기도 중에 본 것은 하나님께서 부으신 은혜의 강물, 즉 영적 능력의 강물,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통해 퍼질수록 더욱 더 배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퍼뜨리면 더욱 큰 흐름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는 말을 쓰시기도 했다. 즉 성령의 흐름은 가면 갈수록 메마르는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 커진다. 기도가운데 본 것이, 한 곳으로부터 시작된 빛 줄기가 한 지점을 지나 다른 곳으로 틀 때, 빛 줄기가 난데없이 훨씬 커졌다. 그리고 그게 계속 반복된다. 할머니와 문경누나로부터 나에게 임한 성령의 빛이 나를 거치자 몇 배는 더 큰 빛으로 다른 이에게 비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흐르게 할 때 더 받은 것보다도 더 큰 빛 줄기가 되었다..이것을 깨달을 때, 아!!! 그렇군! 하며 무릎을 탁 쳤다. 즉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어떤 이에게 임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질 때 더 커지고 그리고 더 큰 것을 받은 사람이 또 더 크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능력을 다른 이에게 흘려 보낸 사람 또한 더 큰 은혜가 위에서 다시 더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기만 하고 흘려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곳에 더 이상 은혜를 보내지 않으시고 그 길을 트시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앞으로 나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여 더욱 더 큰 성령의 사람들 될 사람들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그들이 깨어지면 나보다 더 크게 성령을 경험하며 일하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고 내가 받은 성령의 능력을 안 흘려 보낼 수 없다. 흘려 보내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내게서 그 성령의 물길을 트실 것이다. 그럼 난 아예 성령의 능력을 잃게 된다. 흘려 보내야 더욱 주님이 더 많이 부어주신다. 주님께서 하신말씀이 생각난다. “너희는 내가 했던 것들보다 더 큰일들을 할 것이다.”
이게 바로 영적법칙이다. 우리가 깨어지고 온전한 거울이 되면 성령의 빛 줄기가 우리를 통해 반사 될 때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이다. 우린 Grace amplifiers인 것이다.
55.
9월 23일.
오늘 진짜 사탄의 영을 두 눈으로 보았다.뱀이 교실 안에 똬리를 트고 앉아 있는데 예수이름으로 대적해서 교실 밖으로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밤 기도회 때 완전히 죽였다. 칼을 들고 여기저기 찌르고 반으로 가르고 불로 태웠다. 신기한 것은 문경누나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대적했는데 그분은 천사들을 불러서 그리 하셨다 했다. 아마 나도 천사들과 함께 싸웠나 보다.
56.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장 12절.
작년 송구 영신 예배 때 올해를 위해 뽑은 말씀이다.그리고 그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지금 나는 성령님과 함께 있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그것은 내가 깨닫지 못하던 것.내가 세상의 영 안에 있었을 때는 절대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인데, 이제서야 성령을 통해 인정이 되었다.
오늘 하나님께 꽁한 게 있었다. 주님은 인자하시다면서 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실까.특히 당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사람들 마저 버리실 때가 있는 것을 보고,왜 그러실까 궁금했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했다. 왜 그 사람들이 주님께로부터 멀어질 때 권면하시지 않고 징계나 말씀을 직접 통해 돌이키시지 않으실까?그러지도 않으면서 버리시는 것은 억지 아닌가? 하나님 인자하시다면서 왜 그러실까? 하나님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신다면서 왜 그러실까?주님께 여쭈었더니,주님이 말씀하셨다.
“야, 네가 나와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생각해보자.그런데 잘 사귀다가 내가 너의 잘못 된 점을 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계속 말했다고 하자. 계속 말했는데 네가 그 말을 안 듣는다면, 내가 어떡하겠느냐?”
“…..입을 아예 닫으시겠죠.”
“그래, 그거다. 난 그들에게 충분히 말했는데, 계속 말했는데,그들의 불순종이 이미 가득 찼다.그래서 난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그들이 이미 충분히 징계도 받았는데,내가 충분히 벌했는데도 내게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불순종하고 있다. 그래서 이젠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그렇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진짜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했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안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교회 설교를 통해서든,성경 말씀을 인용해서든 뭣이든 간에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듣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해석해서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은 불순종이다.그 말씀을 진짜 삶에 나타내지 않으면 불순종이다. 불순종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그게 쌓이고 쌓이고 쌓이면, 하나님 더 이상 말씀조차 안 하신다.나의 오해였다.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시려고 하지 않으신 게 아니었다. 그들을 향해 계속 부르짖고 계셨다.제발 돌아오라고.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계속 듣지 않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더 이상 입을 여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공의의 그 수준을 넘어선 그들이 회개치 않고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아예 그들에게 말씀조차 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대로 그냥 살게 내버려두신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저주다. (로마서 1장 참고) 그 저주는 정말 두렵고 떨리는 것이다.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간다면, 우린 파멸밖에 없다.그걸 인정케 되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게 있었다.그렇다면 구원의 길은 너무 어렵지 않은가?
“주님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받겠습니까?”
부자들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물어본 질문과 같았다.그래서 답도 같았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그 순간 너무 은혜가 되었다.울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구원받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내가 해서 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제가 그렇게 구원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차원을 뛰어넘어 하나님 당신을 알게 된 것. 이 곳에 와서 당신을 진짜 알게 된 것. 모두 제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정말 설명이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들처럼 불순종 하여 귀가 막히고 죄에 갇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영을 보지 못하며 사탄의 종 노릇 하여 파멸의 길로 가지 않는 것도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의로워서 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앞으로도 저를 계속 지켜주시고 저를 택하시사 주님의 길로 걷게 하실 것임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것도 당신의 은혜로 얻은 믿음이고,믿으니 그리 될 줄로 압니다.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믿음의 고백이 당신을 기쁘시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며 고백하고 정말 진심으로 감사 드리는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주님은 나의 꽁한 마음을 그렇게 풀어주셨다. 하나님은 정말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셨다. 겸손히 그와 동행하는 삶을 정말 살고 싶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알겠는가? 정말 구원의 그 은혜가 얼마나 커다랗고 자기 자신을 겸손케 하는 것임을 알겠는가? 그 은혜가 온전히 알아진다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 잘나서 그걸 아는 게 아니라, 이해해서 이성적으로,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에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에 있다면 그 은혜를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론 절대 깨닫지 못한다.감정으로 받아서 울고불고 할 순 있으나, 마음으로, 삶으로는 절대 깨닫지 못한다. 난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복음을 머리로만 알고,그게 그냥 옳은 길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정도로만 알았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서. 옳은 길로 가보고 싶어서. 그런데 진짜 마음으로는 은혜에 대한 부분에 감사함이 없었다.내가 그 옳은 길을 사모했던 이유, 옳은 길로 가보는 이유조차 내가 의로워 지기 위함이었다.그게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돌아봐 주실까 했다.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난 몰랐다.난 세상 영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다. 이제야 알겠다.이제 성령과 함께하니 알겠다. 이곳은 주님의 은혜로 온 것이지 내가 선택해서 내가 의로워져서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해 온 게 아니었음을. 주님의 은혜로 십자가 복음을 믿게 된 것이지,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도 아니었음을.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듣고 영의 세계를 알은 것이지 내가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정말 구원은,믿음은 은혜로 오는 것임을..
세상 영에 사로잡혀있다면 모른다. 세상 영과 섞여있어도 모른다. 긴가 민가 하는 것은 아는 게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함께하셔야만 정말 감사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그 은혜를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장 12절.
하나님은, 당신은 정말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은 모두 이루십니다. 아멘.
Prev










